검색어 “우산”에 대한 통합검색결과는 “111”건입니다.
업무담당 (총 1건)
부서명 | 전화번호 | 업무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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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책고용과 > 일자리정책팀 | 02-2127-4969 | · 지역공동체 일자리사업 업무(칼갈이·우산수리사업 포함) · 뉴딜일자리사업 총괄(청년뉴딜일자리사업 제외) · 일반 경호·경비원 양성교육 업무 · 저소득 방문소독 사업 · 기타 일자리 정책 사업에 관한 사항(일자리관련 책자 제작 등) |
동대문소식 (총32건)
2025년 상반기 「우리동네 칼갈이·우산수리센터」 5·6월 운영일정이 일부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5년 상반기「우리동네 칼갈이․우산수리 5·6월 미운영 일자 : 5. 28.(수) 5. 29.(목) 5. 30.(금) 6.2.(월) 6.3.(화)
동대문소식 > 알림마당 > 구정소식
2025.04.10
무뎌진 칼이나 고장난 우산을 어디서 수리해야할지 고민하시는 동대문구민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우리동네 칼갈이·우산수리센터」를 운영하오니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1. 운영기간 : 2025. 3. 4.(화) ~ 6. 30.(월) ※ 단, 용신동은 3.4.(화) 참여자 안전보건교육으로 인해 오후 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시범운영합니다. 2. 운영일시 : 월~금 (토·일, 공휴일 제외) 3. 운영시간 : 오전 10:30 ~ 오후 4시 ※ 접수마감 15:30까지, 물품회수 16:00까지 4. 운영장소 : 동 주민센터 순회 운영 5. 접수방법 : 현장 접수만 가능 6 비 용 : 무료 7. 이용 시 주의사항 - 1인당 칼·가위(2개) 등과 우산(2개 이내)만 접수 가능합니다. - 별도 예약 전화는 받지 않으며, 현장에서 선착순 접수로 진행합니다. - 접수 물량이 많은 경우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 - 자동우산 버튼 수리 불가, 고가의 우산(골프우산, 수입우산) 등 수리 불가. - 전문기술자가 아닌 아마추어 공공근로자분들이 보통 연마기를 사용하여 수리하므로 흠집 등이 염려되는 고가의 칼이나 가위는 연마 불가합니다. ※ 수리나 연마 후 불만족에 대한 배상 책임 없음 - 보관의 어려움으로 수리된 물품을 보관하지 않습니다. ※ 분실 시 본인 책임 - 칼·가위는 반드시 칼집에 넣거나 신문지 등으로 포장하여 안전하게 지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 운영 일정은 내부 사정 및 날씨 등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동대문소식 > 알림마당 > 구정소식
2025.02.27
2024 동대문구 중랑천 물놀이장 운영 기간 종료(2024.8.25.) 이후 디디미 물놀이광장의 어린이 물놀이 시설은 다음과 같이 추가 운영하오니 많은 이용 바랍니다. ▣ 운영개요 ○ 추가 운영기간 : 2024. 8. 26.(월) ~ 2024. 9. 15.(일) ※ 매주 월요일 휴장, 기상여건에 따라 휴장 가능 ○ 운영시간 : 10:00 ~ 13:00, 14:00~17:00(점심 휴게시간 13:00~14:00) ※ 매시간 50분 운영, 10분 휴식 ○ 운영장소 : 중랑천 제1체육공원 디디미 물놀이광장(舊야외수영장 부지, 장안동 19-6) ○ 이용대상 : 만13세 이하 ※미취학어린이 필히 보호자 동반 ○ 이용요금 : 무료 ○ 운영시설 : 문어 물놀이대, 우산분수 등 물놀이형 어린이 놀이기구 ※ "2024 동대문구 물놀이장"의 임시 설치한 시설물(대형풀장, 매점 등)은 운영기간 종료(7/30~8/25)에 따라 운영하지 않습니다. ○ 이용시 유의사항 안내 - 물놀이용 신발·수영복·수영모(모자) 착용(외출용 신발 금지) - 유아 물놀이용 방수기저귀 착용 필수 - 음식물 반입금지, 애완동물 동반 입장불가 - 발열 및 호흡기 증상 등 몸이 아픈경우 입장 및 이용 금지 - 주차장 없음 (문의처) 동대문구 치수과 중랑천수변관리팀(☏02-2127-5687~9)
동대문소식 > 알림마당 > 구정소식
2024.08.25
웹페이지 (총7건)
하정 유관에 얽힌 이야기 목록 청백리의 표상 선왕조 때 대표적인 청백리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하정 유관선생 댁이 현재 신설동 근처에 있었다. '청백리'라는 말은 한마디로 '깨끗한 관리', 요즈음 말로 바꾸면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정직한 성품의 모범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정 유관선생은 문화유씨(柳氏) 명문가 출신으로 고려 중기의 유명한 문신(文臣) 유공권의 후예이며, 그의 증조 할아버지 또한 좌우위상장군 유성비였으니 그의 가문은 그야말로 문무(文武)을 겸한 명문가라 하겠다. 유관 공은 고려 말 충목왕(재위 1337∼1348) 때 태어나 공민왕 20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이래 고려조가 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꾸준히 관직에 있으면서 모나지 않는 둥글둥글한 성격과 공정한 처사로 동료 관원들은 물론이고 많은 백성들로부터도 추앙을 받았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어 병조이랑으로 다시 관직에 올라 세종 9년에 그가 81세로 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네 임금을 모시고 성균관 대사성, 강원도·전라도 관찰사(요즈음 관직으로는 도지사)를 역임했다. 그의 한 점 티와 부끄럼이 없는 행동이며 검소한 생활태도가 많은 이들의 신망을 불러 일으켰으며 국왕 이하 모든 관민이 그를 국노(國老)로 받들고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세종대왕께서 신하들과 연회를 베푸는 자리를 즉시 파하고 몸소 흰옷으로 갈아입고 홍화문 밖으로 나가 백관들을 거느리고 공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의식을 행했다는 왕조실록에 쓰여있다. 세종대왕께서 친히 지으신 제문(祭文)을 보면 고 되어 있다. 청백리 ① 청백한 관리 ② 의정부·육조·경조의 정2품 또는 종2품 이상의 당상관과 사헌부·사간원의 우두머리 가 천거한 청렴한 벼슬아치 충목왕고려 제29대 왕(재위 1337∼1348) 휘는 흥(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때 원나라에 의하여 왕으로 봉하여져 즉위함. 어머니 덕녕 공주가 섭정하였음. 홍화문창경궁의 정문,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건물로서 가장 오래된 건물의 하나임. 제문죽은 이에 대하여 슬픈 뜻을 나타낸 글 효자 유계문 효자 유계문 이미지 장안에서 이름난 효자 유계문 하정 유관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자라면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물론 그랬겠지만 장안에서 이름난 효자였다. 아침과 저녁, 어디를 나가거나 다녀서 들어올 때마다 아버지에게 꼭꼭 문안인사를 드렸으며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온돌 방바닥에 찬 기운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손을 넣어보는 매우 착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조선조 초기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아버지와 함께 관직을 맡았는데 그 아들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 행실이 바르고 언행이 점잖아 그의 아버지 유관을 돋보이게 했다. 세종 8년(1426)에 그 아들이 충청도 관찰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현재는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분리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합쳐져 있어 충청도 땅은 매우 넓었으며 관찰사 라는 직책은 오늘날 도지사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자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유계문이 한사코 관찰사직을 사양하며 발령을 받은 임지에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유관공이 아들을 불러 그 사유를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임금께서 주시는 영광스러운 벼슬인 관찰사를 마다하느냐 관찰사란 직책은 매우 중한 자리이고 아무나 하고 싶다고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란 것쯤은 너도 관직을 오래 했으니 잘 알 것 아니냐?"며 나무랐다.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죄송하다 말하기 전에 네가 관찰사 직책을 맡을 수 없는 이유부터 말해 보아라." 아버지가 자꾸만 다그치자 아들 유계문이 입을 열었다. "저는 다만 불효를 저지르는 일을 삼가고자 할뿐입니다." "아니, 뭐야? 불효를 저지른다? 관찰사를 맡는 것이 어째서 불효가 된다는 말이냐? 나로서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사실대로 아뢰어라." 아무리 성품이 온화한 유관 공이었지만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제서야 아들이 대답을 했다. "저는 아버님 존함을 밟는 관직만큼은 안 하기로 결심한 바 있습니다. 그런 불효를 어찌 자식으로서 할 수가 있습니까?" "아니, 내 이름을 밟는 직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관찰사란 직명에 아버님 함자인 볼 관(觀)자가 있지 않습니까? 어찌 제가 감히 존경스런 아버님의 함자를 쓰는 직책을 맡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치 아버님 이름을 딛고서 감투를 쓰는 것 같아 그 벼슬만은 사양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 미련한 자식아. 그 사표는 즉시 반려다. 대신 내가 이름을 바꾸면 되지 않느냐?" "…" "볼 관(觀)자를 즉시 너그러울 관(寬)자로 바꾸겠다. 자식이 잘된다면 아비가 이름을 바꾼들 무슨 흉이 되겠느냐? 내 이름은 오늘부터 유관(柳寬)이니라." 이리하여 그동안 공께서 써 오던 이름자를 중년에 들어서 자식의 출세를 위하여 바꾼 것인데 사실 공의 성품을 보거나 처신을 후세에서 살펴보면 날카롭게 사물을 본다는 뜻의 '볼 관(觀)'자 보다는 성격이 너그럽다고 쓰이는 '너그러울 관(寬)'자가 매우 합당한 이름이라 여겨진다. 검소하고 근면한 유관선생 검소하고 근면한 유관선생 이미지 유관은 흥인지문(현재의 동대문) 밖에 안방과 사랑채가 나란히 붙어있는 초가집에 살았다. 「동국여지비고」라는 역사책을 보면 공의 직급이 차츰 높아져 정승 반열에 올라 궁색을 면할 정도로 국록(요즈음 말로 국가에서 주는 봉급)을 받았음에도 그가 하도 청빈하게 살다 보니 집에 바깥대문과 담이 없었다 한다. 관직에 있는 다른 이들이 공에게 "영감께서 이제는 정승 반열에 오르시어 남의 이목도 있고 하니 집을 옮기시거나 수리를 좀 해서 쓰는 것이 좋을 듯 하오이다."하며 넌지시 말을 건네면 "아직도 집이 쓸만하고 손때 묻은 것들이 많다 보니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하며 회피를 했지만 공께서는 어렵게 사는 이웃이나 친척들을 돕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태종 임금께서 정승인 유관이 초가집에 대문도 담도 없이 청빈하게 산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공이 잠든 밤을 이용하여 몰래 선공감을 보내어 울타리를 처 주었다고 기록돼 있다. 공께서는 한겨울에도 거의 맨발로 사셨다. 그 당시에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무명솜을 다진 버선을 양말처럼 신었었는데 공께서는 버선을 아껴 신느라고 집안에 들어오면 여름이나 겨울에도 항상 맨발로 지냈다. 밥을 먹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먹던 밥알을 삼키는 대신 숟가락에 밥알을 뱉어놓고 맨발에 짚신을 신고서 마당으로 나섰다. 찾아간 사람이 송구스러워서 "아니, 정승 어른께서 이러시면 저희는 어쩌란 말입니까? 면구스럽습니다."하면 "이 사람들 좀 보게나. 자네들은 사람인 나를 보러 오는 것이지 벼슬 사는 나를 보러 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집에는 오지 말았어야지." 평소에 그저 공정무사하고 청렴결백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찾아가기는 했지만 첫 말부터 그렇게 나오는데 무슨 낯으로 사사로운 부탁을 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공께서는 무척 부지런한 분이셨다 한다. 집 앞에서 손수 밭을 일구시어 거름을 갖다 주고 채소나 푸성귀를 심어 반찬으로 썼다. 한번은 여름에 누가 공을 찾아갔더니 반색을 하면서 "자네 마침 때맞춰서 잘 왔네."하시는 것이었다. "…" "지금 밭에 잡초가 너무 성해서 내가 김을 매러 나가는 길인데 혼자 갈려니 너무 심심해서 누구 동무해서 갈 사람이 없나 생각 중이었어." "하지만 전…" "상관없어. 자네랑 나랑 같이 김을 매면서 찾아온 용건을 얘기하면 되지 않은가? 더운데 방안에 틀어 박혀서 부채질하면서 얘기하는 것 보다 맑은 바람 쐬면서 김을 매며 얘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인간적인가. 그렇게 하세나." "저요, 저는 그런 게 아니고 밭일을 한번도…." "아니! 뭐라고 일을 하기 싫다고? 그럼 삼시 세 때를 먹지를 말든지 해야지. 자네가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무릇 정치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정치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한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일을 여러 가지 한몫 겸해서 해야지. 일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간에 정도 들고 또 일을 다하고 나서 등목도 함께 한다면…." 그렇게까지 나오는 데야 농사일을 하지 않는 것이 선비요 관리라 생각했던 젊은 선비라 할지라도 꼼짝없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몸을 움직이고 꿈지럭거릴 수 있다면 일을 해야지. 일 중에는 천하지대본 (天下之大本)이라고 할 농사가 제일이지. 안 그런가? 농부의 마음, 곧 농심(農心)이면 무불성사(無不成事)라. 안되는 일이 없어. 정직하고 근면한 마음이지.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 결과는 뭇 백성을 먹고 살게 하고… 땀 흘려 일을 하는 것은 정승이나 농부나 같지. 아니 농부 중에 제일로 치는 농부는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이야. 자식 농사를 지으니까 말이야. 가르치기만 하면 사람이라는 결실을 후에 거두니까 말이야!" 이것이 그의 인생관이었고 또 교육관이었다. 너무나 서민적인 하정 유관 시중을 드는 종을 여럿 거느리고 솟을대문과 높은 담장을 두른 고관댁들과는 달리 유정승 집에는 대문이나 담이 없었으므로 누구나 쉽게 유정승 집을 드나들 수 있었다. 때로는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을 찾아온 시골 선비들도 들렀고 또한 양반집 자제나 그를 숭모하는 젊은 관원들도 선생의 높은 학문과 경륜을 배우기 위해 유정승 댁을 찾아왔다. 유정승은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면 양반과 서민, 직급의 높고 낮음을 개의치 않고 만나주었다.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며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명문가의 아들도 있었고, 시골 농부나 장사꾼의 아들도 있었다. '유정승은 누구나 가르침을 요청하는 이에게는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가르쳐 준다더라'하는 소문이 두루 퍼지자 많은 이들이 유정승을 찾아와 배우기를 간청했다. "그래, 자네는 내게 무엇을 배우러 찾아 왔는고?" 자기를 찾아온 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그의 부모 이름을 묻거나 신분을 묻는 법이 결코 없었다. "저는 어디에 사는 누구이고 저의 조부님은 통훈대부이신 ○○○이십니다."해도 "자네가 내게 제자가 되고자 청했으니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지 나는 자네가 누구의 손자이든 관계치 아니하네." 하며 그의 얘기 듣기를 사양했다고 한다. 유정승은 또한 가난한 이웃이나 친척들을 돕거나 좋은 일에 재물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저희 마을에 개울이 있어 큰물 때마다 통행이 불편하여 마을사람들이 다리를 놓고자 하는데 경비가 부족합니다." 하면 찾아온 이의 입에서 도와 달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런 것은 정치를 하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여 나라에서 다리를 놓아줘야 할 것을 기특하게도 백성들이 세운다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도 조금 보태주지."하며 선뜻 돈을 내놓았다. "저희 선대 6대조께서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지내셨고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셨는데 그 어른의 사당을 고향 땅에 세우려고 하는데 집안 형편이 궁색하여 도움을 청합니다." 하면 "뿌리를 찾고 조상을 기린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지. 내 조금 보탬세."하며 돈을 주었다. '우산각 골'과 하정 유관 '우산각 골'과 하정 유관 이미지 청렴결백한 하정 유관 하정 유관 공은 성품이 워낙 청렴결백하여 부정과는 거리가 멀고 또한 재물을 탐내지 않다 보니 그가 가진 재산이란 방 2칸짜리 초가집 뿐이었고 수중에 있는 돈이란 나라에서 주는 급료 뿐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이웃과 친척들을 돌보아 주다 보니 궁색했고 심지어는 그를 찾아와 수시로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박정하게 대할 수 없어 조금씩 나누어주다 보니 그는 항상 가난을 면할 수 없었다. 남의 문중에서 사당을 짓겠다고 찾아와도 도와주고 마을에 다리나 서당을 짓는다고 도움을 청하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고 초석이 될 인재를 기르는 일인데 교육자라 자처하는 내가 어찌 인색할 수 있으리요."하면서 돈을 나눠 주다 보니 살림은 항상 쪼들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난 선생의 부인 또한 궁색한 살림을 꾸려 가면서도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장맛비가 계속하여 쏟아지는 날이었다. 낡은 초가집이라 장대같이 내리 퍼붓는 장맛비에 그만 지붕이 새기 시작하였다. . 해마다 추수가 끝난 가을이면 새 볏짚으로 이엉을 이어서 새로이 초가 지붕을 얹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볏짚도 사야 하고 또한 지붕을 잇는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어야 하니 검소하기 짝이 없는 선생으로서는 그것마저도 낭비라 생각하고 지난 가을에 새 지붕을 얹지 않은 탓이었다. . 이 방 저 방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처음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세수그릇을 갖다 놓고 빗물을 받아냈지만 며칠씩 연속되는 장맛비라 이곳 저곳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니 속수무책이었다.. "부인, 어서 가서 우산을 가져오도록 하시오. 우리 두 사람이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해 보도록 합시다.". 부인으로서는 심란하기 짝이 없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감께서 시키는 대로 우산을 가져와 두 내외가 방안에서 비를 피했다. . "부인,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지 않소? 우리에겐 이렇게 비를 피할 우산이라도 준비되어 있으니 말이요.". 부인으로서는 듣기가 조금 거북한 말이었지만 워낙 성품이 그런 분이라 굳이 그 말씀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우산이라도 있지만 이 장맛비에 우산마저도 없는 백성들이 집에 비가 새면 어찌하나 그게 걱정이구려." 공께서 그리 말씀하시자 부인께서도 그만 불평을 토하고 말았다. . "비가 새는 방안에서 우산으로 빗물을 받는 일이 어찌 다행한 일이라 말씀하십니까. . 우산이 없는 이들은 미리미리 알아서 다른 방도를 썼을 테니 대감께서는 마음을 놓으셔요."하였다. . 하정 유관 선생의 외손(6대손)으로서 조선시대 실학파의 선구자인 지봉(芝峰) 이수광(李睡光)은 공이 거주하던 옛 집터에 하정선생을 기리는 정자를 지은 다음 '비우당(庇雨堂)'이라는 현판을 달아 공의 덕과 인품을 후세에 전하였으며 낙산 변두리인 신설동 지역을〈우산각 골〉이라 불렸다. ||
문화관광 > 국가유산와 역사 > 동대문의 옛 이야기/인물 > 하정 유관에 얽힌 이야기
신설동 조선시대 동부숭신방(崇信坊)에 새로 설치한 마을 신설동 조선시대 동부숭신방(崇信坊)에 새로 설치한 마을이라 하여 신설계(新設契)라 하던 것을 갑오개혁 때 신설동(新設洞)이라 하였는데 예전엔 이곳을「새말」또는「신리(新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예전엔 동대문시립도서관일대를「우산각골(雨傘閣里)」또는「우선동(遇仙洞)」이라고 하였는데 우산각(雨傘閣)이란 조선 세종때 우의정을 지낸 하정(夏亭) 유관(柳寬) 선생이 살던 집을 부르던 이름으로 하정(夏亭)선생은 비가 오는 날에는 방안에서 우산(雨傘)을 받쳐들고 비를 피했을 정도로생활이 청렴(淸廉)하여 청백리(淸白吏)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숭인동 동묘(東廟) 동쪽에서부터 신설동 남쪽 청계천로 변에는 타원형으로 자리 잡은 경마장(競馬場)이 있었습니다. 경마장은 원래 용산(龍山) 이촌동(二村洞)에 있었으나 1925년 을축년(乙丑年) 대홍수 때 시설이 유실 되어 이곳 신설동 85번지 일대로 옮겨졌으며, 1928년부터 1954년 뚝섬으로 이전(移轉)할 때까지 경성경마장(京城競馬場)이란 이름으로 그 기능을 하였다고 합니다. 현재신설동에는「동대문도서관」「동대문우체국」「동대문등기소」「성북수도사업소」등 공공기관과「우산각공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문화관광 > 국가유산와 역사 > 동대문의 동명유래 > 신설동
옴부즈퍼슨이란? 아동의 권리를 향상하기 위해 독립적인 지위를 갖고 아동의 입장을 옹호해줄 수 있는 대변인입니다. 옴부즈퍼슨의 역할은? 아동권리 침해사례 발굴 모니터링 및 조사 정책 제언 및 시정 권고 아동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 제언 동대문구의 옴부즈퍼슨 2019년 8월 24일 위촉(2019. 8. 24. ~ 2021. 8. 23.) 마훈 변호사(법무법인 정률), 신지은(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차용기(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옹호센터 소장) 신고방법 : 동대문구 아동청소년과(02-2127-4243/kyjeee@ddm.go.kr)로 신고 동대문구 아동 권리 옹호를 위해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겠습니다. 옴부즈퍼슨 부서 옴부즈퍼슨 관련 회의 권리침해 시 처리 절차 아동친화팀 아동권리 침해 신고 접수 옴부즈퍼슨 아동권리 침해 신고 접수 아동친화팀 권고안 및 개선안 등 관련 부서 송부(해당시) 관련 부서 내부 검토 및 수렴 방안 결정 옴부즈퍼슨 개선 방안 및 개선 내용에 대한 모니터링 등 개선사항 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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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상반기 「우리동네 칼갈이·우산수리센터」 5·6월 운영일정이 일부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5년 상반기「우리동네 칼갈이․우산수리 5·6월 미운영 일자 : 5. 28.(수) 5. 29.(목) 5. 30.(금) 6.2.(월) 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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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0
2025년 상반기 이문1동「우리 동네 칼갈이․우산수리」운영안내 가. 운영일시 : 3월(18/25일), 4월 29일, 5월 27일, 6월(23/24일) 나. 운영시간 : 오전 10:30 ~ 오후 4시 (접수마감은 오후 3시30분) 다. 운영장소 : 외대앞역 광장 라. 접수방법 : 현장접수(사전예약 불가) 마. 세부사항 : 첨부파일 참고
희망동대문 > 동주민센터 > 00동 > 동소식 > 공지사항
2025.04.08
동대문구, 상반기 칼갈이 ‧ 우산수리 일정 알림 -3~6월 동별 순회 운영… 평일 10시 30분~15시 30분 방문 접수 -구 누리집, 소식지에서 동별 일정 확인… 수리비 무료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대문소식 > 알림마당 > 보도자료
2025.03.17